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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17 (2020) 후기 리뷰 - 알베리히 작전과 지그프리트 라인 본문

리뷰와 일상

영화 1917 (2020) 후기 리뷰 - 알베리히 작전과 지그프리트 라인

말 그리고 말 2020. 3. 1. 09:39

 

영화 1917의 제작배경

 

지난주, 아직 코로나가 천 명을 찍기 직전쯤 영화 1917을 보고 왔습니다. 특이한 것이, 이 영화의 감독인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인 알프레드 멘데스(Alfred Mendes)씨가 1917년 10월 1차세계대전 중 실제 겪은 것을 바탕으로 손자인 샘 멘데스 감독이 이 영화를 찍었다고 합니다. 포스터 중앙에 있는 영국인 배우(조지 맥케이, George MacKay - 1992년생이라는 놀라운 사실)가 알프레드 멘데스 할아버지 역할을 한 것이죠.

 

샘 멘데스 감독과 그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멘데스

 

개인적으로 전쟁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냥 같이 가는 사람을 위해 봐준다는 마음으로 기대도 없이 갔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정말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잔잔하기도 하고 다큐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호불호가 조금 갈릴 것 같긴 했지만 저한테는 매우 '호'였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아래 메인 예고편을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저는 예고편도 보지 않고 따라가서 지금에서야 예고편을 봤는데 다시 그 때의 분위기가 떠오르네요.

 

 

메인 예고편 (한국어) ↓

https://youtu.be/ZIQbJemUedU

 

 

독일군 방어선 지그프리트 라인(=힌덴부르크 라인)

 

영화에서 주인공(영국군)이 적진(독일군)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독일군은 모두 작전상 후퇴를 해서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지만 독일군 참호에 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서 주인공이 영국군 참호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튼튼하게 지어 놓은 독일군 참호를 보고 고개를 저으며 "대박 역시 독일군이네 참내" 라는, 뭔가 대단하고 좋긴 한데 징글징글하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독일에서 맨날 느끼던 감정 같아서 괜히 공감이 되고 웃겼습니다. 

 

그 대단한 독일군 참호는 일명 지그프리트 라인(Siegfriedstellung, Siegfriedlinie, Hindenburg Line)이라고 하는, 1차 세계대전 중 1916-1917년 사이 서부 전선(western front) 프랑스 지역에 지어진 독일군의 방어선입니다. 아래 위키에서 퍼온 지도에 색으로 표시해봤습니다. 빨간색이 최전선 구-지그프리트라인이고 노란색이 작전상 축소된 신-지그프리트라인입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최전선에 있던 독일은 빨간 선과 노란 선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작전상 움직이곤 했는데, 저 지역을 알베리히 구역(Alberich-Gebiet)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하늘색으로 칠해놓은 곳입니다. 여기가 바로 이 영화의 배경 장소입니다. 작전상 후퇴와 전진을 하는 곳이라서 양 군 모두 힘이 빠지는 소모전이 벌어지는 곳인데, 소모적이라는 점이 영화에 많이 드러납니다. 군사들은 매우 힘들어하고 '그깟 땅 그냥 줘버리지' 라고 하며, 죽어가거나 부상 당하는 병사들도 많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영화의 주인공의 임무는 바로 아래 파란 화살표처럼 기존 최전선에서 알베리히 구역에 배치해둔 독일군의 수많은 방어선과 장애물(?) 들을 넘어 뒤로 빠져있는 지그프리트 라인까지 가서 작전상 후퇴인줄도 모르고 공격하려고 대기타고 있는 아군에게 공격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공 여부는 스포하지 않겠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알베리히와 지그프리트

 

여기를 알베리히 구역 및 알베리히 초토 작전지그프리트 라인으로 부르는 이유는 고대 게르만 서사와 노르드 신화, 바이킹.. 등과 관련이 있는데요. 이건 좀 긴 이야기라서 게르만쪽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요약: 지그프리트는 인간미 있는 용맹한 승리의 용사, 알베리히는 저주를 내리고 보물을 노획하는 독한 난쟁이

 

알베리히게르만 중세 서사 '니벨룽겐의 노래' 에 나오는 난쟁이의 이름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북부 독일 역사와 맞닿는 노르드 신화(Nordische Mythologie, 북유럽 신화) 뵐숭 사가와 이후의 에다 서사에 나오는 안드바리(Andwari)*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 Andwari가 니벨룽겐의 노래로 넘어가면서 알베리히가 되었고, 니벨룽겐의 노래는 리차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그리고 이 오페라의 모티브를 따온 소설과 영화 '반지의 제왕'으로 이어집니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에 해당합니다.

*Andwari(영어표기: Andvari)는 고대 노르드어로 "조심스러운 이(careful one)"라는 뜻

 

지그프리트는 역시 노르드 신화 뵐숭 사가와 이후 에다 서사에 나오는 지구르드(Siegrud)가 그 원형이며,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지그프리트가 되었고, 니벨룽겐의 반지에서도 지그프리트로 사용되었으며, 소설과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는 프로도에 해당합니다(물론 프로도는 지그프리트만큼 아주 용맹한 전사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알베리히는 니벨룽겐의 보물(황금)을 손에 넣고 자신의 고향인 니벨하임에 갑니다. 그 중간에 아주 많은 일이 있고, 이후에 이 반지를 뺏는 용감한 영웅이 바로 지그프리트입니다. 알베리히가 니벨룽겐의 보물을 손에 넣을 때,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다고 선언하고 저주를 내리는데요.

 

사랑하길 포기하고 저주를 내리고 보물을 가지고 떠나 버린다는 점에서, 그리고 알베리히가 차지한 그 보물을 다른 사람들이 다 빼앗으려고 하는데 빼앗은 사람들은 전부 파멸했다는 점에서 이 구역 및 초토 작전명 코드를 '알베리히'로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쥘 것은 본인들(독일)이 될것이라는 각오가 담긴 이름이 바로 지그프리트인 듯합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마지막으로 멋진 영상이 담긴 사이트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래 사이트로 가시면 실제 전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카메라 앵글을 찍은 화면이 뜹니다. 마우스로 방향을 돌려 보시면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실제 전쟁 상황을 체험해보실 수 있습니다. 

 

https://intothetrenches.1917.movie/

 

1917 | 360 Trench Experience | In Theaters Now

Step into the trenches and experience the making of the World War I movie epic, 1917. Watch the trailer here. In theaters now.

intothetrenches.1917.movie

 

북유럽 신화도 파고 들어가다보면 정말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학창시절엔 정말 그리도 재미가 없었는데, 마치 라틴어를 알면 처음 보는 단어도 짜맞춰지듯, 발할라, 발키리, 지옥의 묵시록, 오딘, 라그나로크 등 여러 모티브들과 관련성이 많으니 한 번 찾아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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